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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조협회

45.메이드하라, 한국능력자육성재단! 본문

45.메이드하라, 한국능력자육성재단!

ovo협회장 2023. 1. 1. 21:40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게 많다. 안 되는 걸 되게 하려는 한국 특전사 같은 진상 꼰대나, 이해할 수 없는 지시를 시키는 상사라던가, 가상의 캐릭터들을 향한 오타쿠들의 욕망이라던가. 그러나 내가 감히 말하건대, 이 세상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건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같은 전장에서 싸운 동료들이 메이드 차림으로 카페에서 일하는 상황일 것이다. 

 

 

무덥던 날이 가고 바람이 시원해,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계절옷을 입는 시기였다. 건운은 마스크로 얼굴을 대강 가리고는 한적한 도로를 걷고 있었다. 사람들이 적은만큼 영업중인 음식점이나 카페가 없었다. 건운은 십 몇 분을 헤매다 겨우 영업중인 카페 하나를 발견하고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메이드하라, 한국능력자육성재단입니다!” 

 

건운은 나갔다. 다시 한 번 간판을 확인해봤다. ‘Maid in Cafe’라고 적힌 글씨가 하얀 동그라미 간판 안에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글씨체로 적혀 있었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의 메이드 카페라니, 악취미다. 건운은 눈살을 찌푸리다 심호흡을 하고, 아까 자신이 들은 인사말과 카페 안의 풍경이 현실인지 되짚어봤다. 그러나 다시 되짚어봐도 혼란만 가득했다. 건운이 심호흡을 하고 다시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딸랑, 종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안에는 동물 귀 머리띠를 한 메이드 세 명이 카페 입구 쪽 카운터에 서 있었다. 개구진 웃음을 지으며 다른 두 명을 보는 한 명과, 온화하게 웃으며 맞이하는 한 명과, 무표정하게 이쪽을 보는 한 명의 메이드가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죠……?” 

“아, 별 거 아녜요.” 

 

건운의 물음에 답한 196cm의 고양이 귀 메이드가 가볍게 웃었다. 하얀색에 가까운 옅은 색소의 짧은 머리카락이 형광등의 빛을 받아 푸른색을 냈다. 하얀 안광이 감도는 푸르스름한 바이올렛 색의 눈이 휘어지며 장난스러운 눈웃음을 짓는 게, 

영락없는 장난기 많은 고양이상이었다. 

 

“그냥 평범한 메이드 카페입니다!” 

“메이드 카페에 ‘평범한’이란 말이 붙을 수 있냐고요.” 

 

‘우리 사이에 이런저런 거 깐깐하게 따지지 맙시다.’ 능청거리는 고양이 귀 메이드는 프릴이 달린 하늘색 빅토리안 메이드복을 입고 하얀 하이 니삭스를 신고 있었다. 고양이 귀 메이드의 몸짓을 따라 무릎을 조금 넘는 메이드복이 살랑살랑 움직였다. 둥그런 프릴 에이프런 위에 ‘공격반 소대장 아이올로네 레이아스’라고 적힌 눈송이 모양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운이 안 오길래 걱정했어요.”

 

동글동글하고 순한 인상의 메이드가 다정하게 웃으며 말했다. 동그란 동물 귀 머리띠를 하고 치마 부분이 퐁실퐁실 부푼 메이드복을 입으며 웃는 모습이 푹신하고 보드라운 분위기를 풍겼다. 잠을 자는듯 곱게 감은 두 눈이 아래로 생기가 발그스름한 홍조를 만들었다. 

 

“그런데… 가오니는 무슨… 동물이에요? 곰?” 

“…햄스턴데요….” 

 

햄스터 귀 머리띠를 쓴 옅은 회색의 단발이 의기소침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225cm의 든든한 체구를 보면 햄스터보다는 곰을 닮았지만, 축 처진 모습은 맹수보다는 소동물에 가까웠다. 건운은 어찌저찌 좋은 말로 달래면서 햄스터 귀 메이드를 도닥였다. 

쥐색의 클래식한 메이드복에 거미줄 무늬가 흐릿하게 새겨져 있었고, 어깨부분이 부푼 메이드복이 먹이를 잔뜩 모아둔 햄스터 볼 같았다. 메이드복에 비해 밋밋한 에이프런의 가슴팍에는 보라색 글씨로 ‘방어반 소대장 남궁가온’이라는 거미 모양 이름표가 비뚜름히 붙어 있었다. 건운은 햄스터 귀 메이드를 도닥이다가 등에 ‘주의: 먹이를 주지 마시오.’라는 메모가 붙어 있는 걸 보고 다른 메이드들을 번갈아 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날 기다렸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상부에서 전 한국능력자육성재단의 대원들을 대상으로 소집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하얀 리본으로 황갈색의 포니테일을 동여맨 메이드가 딱딱한 어조로 보고했다. 안경 너머로 피곤해 보이는 인상이 애처로웠으나, 195cm의 무표정한 시선은 외려 무섭게 느껴졌다. 그에 맞지 않게 아래로 처진 강아지 귀 머리띠가 묘하게 어울려 언밸런스한 귀여움이 느껴졌다. 프릴이 없는 하얀 에이프런과 검은색의 빅토리안 메이드복 아래로 전투화가 얼핏 보였다. 강아지 귀 메이드는 에이프런의 가슴팍에 이름표를 단정하게 달고 있었다. ‘치유반 소대장 한나르샤’ 시안색 반짝이 이름표에 검은색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건운은 강아지 귀 메이드의 이름표를 보다가 시선을 다시 마주했다. 강아지 귀 메이드가 허리에 한 쪽 손을 올리고 다른 손에는 은색 쟁반을 잡은 채로 말을 이어갔다. 

 

“집합이 가능한 대원들을 대상으로 문서를 보냈는데, 못 받았습니까?” 

“못 받았습니다만…. 아니 그런데 이미 은퇴한 군인들로 왜 메이드 카페를 연 거래요?” 

 

건운의 질문에 강아지 귀 메이드가 말없이 죽은 눈으로 건운을 바라봤다. 몇 초 동안 아무 말 없이 바라보는 시선에, 건운은 ‘…죄송합니다.’하고 사과했다. 강아지 귀 메이드는 일단 안으로 들어오라며 등을 돌리고 앞장 서서 걸어갔다. 강아지 귀 메이드가 뒤를 돌자, 에이프런 리본 아래에 달려 있는 베이지색 강아지 꼬리가 보였다. 건운은 다른 두 메이드에게도 동물꼬리가 달려있는지 꽤나 많이 신경 쓰였지만, 눈을 꾹 감았다 뜨며 참아냈다. 앞서 가는 강아지 메이드의 발걸음은 느리지 않았지만,

치마는 나풀거리지 않고 격식 있게 잔잔했다. 강아지 꼬리나 포니테일도 살랑거리지 않고 치마처럼 고요했다.

 

“그래도 와서 다행입니다, 마침 가게 오픈 테스트로 손님 역할이 필요했거든요.” 

“네?” 

“운이 손님 역할을 해줘서 다행이에요. 대기업 회장이니까 잘 알 거라고 생각해요.” 

“예?” 

“안쪽 자리에 앉으면 됩니다, 건운.” 

“내…, 내 의사는요?” 

“자자, 어서 앉으십쇼! 다른 대원들이 기다립니다!”

“뭐요?” 

 

고양이 귀 메이드가 건운을 의자로 밀어 넣듯 등을 떠밀었다. 건운은 황망한 눈으로 세 메이드를 쳐다봤지만, 건운이 자리에 앉자, 세 동물 메이드는 각자 다른 곳으로 향했다. 누굴 따라가야 할지 고민하는 건운에게 다른 메이드들이 메뉴판을 들고 다가왔다. 색이 옅어 유령처럼 보이는 메이드가 혈기왕성하고 방정맞게 총총 다가왔다. 희뿌연 밀발을 트윈테일로 묶어 말괄량이처럼 장난스러운 표정이 괜히 불길했다. 동그란 안경 속 올리브 색 눈이 건운을 곧장 바라봤다. 건운은 괜스레 등골이 섬찟했다. 색이 옅은 메이드 옆에 누가 봐도 대인관계가 어색해서 안색이 퍼렇다 못해 검은 메이드가 어영부영 뒤를 따라 왔다. 

하얀색의 머리카락에, 끝 부분만 검게 물든 트윈테일이 갈팡질팡

흔들렸다. 건운이 이렇다 할 반응도 못한 채로, 결국 두 명의 트윈 테일 메이드가 건운이 앉은 테이블 앞에 섰다. 

 

“어서 오세요, 주인님~♡! 주문은 무엇으로 하시겠어요?” “어… 어서 오세요…. 주…님…….” 

 

상반된 메이드들의 환영 인사에, 건운은 반응하지 못하고 입만 달싹였다. 엉겁결에 주님이 된 건운이 눈만 깜빡이자, 옅은 밀발의 메이드가 메뉴판을 건넸다. 메뉴판은 사무용 검정색 클립보드였다. 맨 앞 표지에는 코팅이 된 검은 색지에 시안색으로 

‘한국능력자육성재단 메이드 카페 추진 기획’이라고 적혀 있었다. 종이의 맨 밑에는 ‘한국능력자인식개선위원회’라는 작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건운이 막 표지를 다 읽고 다음 장을 넘기려는 순간, 옅은 밀발의 메이드가 냅다 건운의 옆에 앉았다. 다른 메이드들보다 짧고 하얀 리본을 둘둘 둘러 귀엽다기엔 난잡하게 보이는 올리브색 메이드복이 부담스럽게 다가오자, 건운은 슬그머니 거리를 벌렸다. 올리브색 반팔 아래로 더이상 보이지 않는 흉터 자리가 희었다. 

 

“주인님♡, 귀여운 재하 메이드에게서 메뉴 설명 들으시겠어용~?” 

“아… 아뇨….” 

“들~으~시~겠~다~구~용~??” 

“…….”

 

건운이 도움을 청하듯 간절한 눈빛으로 하얀 트윈테일 메이드를 바라봤지만, 하얀 트윈테일 메이드가 식은땀을 흘리며 건운의 시선을 피했다. 옆에서 부담스럽게 맑고 초롱초롱한 눈빛이 건운에게 대답을 강요했다. 건운은 어쩔 수 없이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하얀 트윈테일 메이드가 손으로 자신이 입은 검은 에이프런의 끝자락을 꾹 쥐고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넹~! 재하 메이드가 우리 주♡인♡님♡께 추천 메뉴를 알려드릴게용~♡” 

“좀… 조금만 뒤로 가주세요….” 

“가장 인기 많은 메뉴는 ‘두근두근♡ 메이드의 사랑 가득 오므라이스☆’예용~!” 

“이러지 마세요…….” 

 

옅은 밀발의 메이드가 건운의 말은 무시하고 손을 하트로 만들어 ‘두근두근♡’에 맞춰 뿅뿅 손하트를 날렸다. 잠깐의 설명에도 양갈래로 묶은 머리카락은 쉴 새 없이 흔들렸다. ‘방어반 소속 윤재하’라는 초록색 네임핀이 하얀 프릴 머리띠에 양쪽으로 달려서 혼란스럽기 그지 없었다. 옅은 밀발 메이드가 백발 트윈테일 메이드를 쳐다보았다. 백발 트윈테일 메이드는 누가 봐도 곤란한 표정이었지만, 거기 있는 아무도 도울 수가 없었다. 결국 백발 트윈테일 메이드는 입을 뗐다. 

 

“그… 그리고… ‘보글보글♪’….” 

“보글보글~” 

“…….”

 

무릎까지 오는 밋밋한 하얀 메이드복에 레이스가 달린 검은 에이프런을 입은 메이드가 겨우 두 단어를 뱉더니 입을 꾹 닫고는 우물거렸다. 에이프런의 레이스를 만지작거리는 손목에는 셔츠 슬리브 악세서리가 눈에 띄었다. 손목에는 검은색 원에 반짝이는 하얀색 글씨로 ‘방어반 소속 진세란’이라는 네임핀이 달려 있었다. 분명히 그 네임핀을 준비한 것 같은 다른 메이드는 백발 트윈테일 메이드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며 다음 말을 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보냈다. 

 

“보… ‘보글보글♪… 아이, 차…’ 하……. …아이 차가운 아이스 메론소다♧……’입니다…….” 

“…수고가 많아요…….” 

“괜찮…습니다……. 메이드…라면 응당… 해야 할 일이기에…….” 

 

안 그래도 영혼 없이 텅 빈 검은눈에 희망과 자존감과 생기까지 잃은 모습에, 건운은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형식적이고 군인다운 답을 한 백발 트윈테일 메이드는 하얗게 불태운 모습으로 멀거니 서 있었다. 그 테이블에서 가장 생기가 넘치는 옅은 밀발의 메이드가 주문서를 들고서는 건운에게 웃으며 물었다. 

 

“자, 주인님♡ 어떤 메뉴를 주문하시겠어요~?” 

“그… 이거, 메뉴…이름을… 말해야 합니까……?”

 

옅은 밀발의 메이드가 당연한 걸 뭣하러 묻느냐는 눈빛으로 건운을 바라봤다. 건운은 메뉴판을 꾹 쥐고는 입을 몇 차례 열었다 닫기를 반복했다. 건운은 순간 한 가지 메뉴만 말해도 괜찮았던 백발 트윈테일 메이드가 부러웠으나, 백발 트윈테일 메이드의 머리에 씌워진 레이스와 리본이 있는 머리띠를 보고서는 제 처지에 안심하며 한숨을 내쉬듯 재빠르게 말했다. 

 

“두근두근♡ 메이드의 사랑 가득 오므라이스☆랑 보글보글♪ 아이 차가운 아이스 메론소다♧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네에~! 곧 준비하고 올게용~♡ 주방으로 가자!” 

“……알겠습니다….” 

 

옅은 밀발의 메이드가 백발 트윈테일 메이드를 끌고서는 빠르고 경쾌한 걸음으로 사라졌다. 건운은 잠깐 자괴감이 들어 머리를 쥐어 감쌌다. 한숨을 쉬고는 메뉴판을 보려다가 쓰레기볶음이 있는 걸 보고서는 내팽겨치듯 닫았다. 여긴 당연하게도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었다. 건운은 착잡한 마음과 함께, 이 난장판이 과연 어디까지 갈지 궁금해졌다. 건운은 다른 사람들이 있을 주방 쪽을 바라보다가 테이블에서 벗어나 주방으로 걸어갔다. 

주방 안에는 여러 메이드들이 있었다. 보이는 메이드들만 서너 명이었다. 동물귀 머리띠를 한 메이드가 두 명, 프릴 머리띠를 한 메이드가 두 명이었다. 건운은 조심스럽게 안으로 향했다. 손님 역할이 자신밖에 없었으니, 주방 안은 그리 시끌벅적하지 않았다. 

건운이 들어오자, 메이드들이 건운을 반겼다.

 

“주방 안도 구경하러 온 건가요?” 

“네, 궁금해져서요.” 

“손님이라면 허락 못 해주지만, 운이라면 괜찮을 거예요.” 

 

햄스터 귀 메이드가 온화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곧 나올 음식을 시식하는듯, 앞접시에 볶음밥이 담겨 있었다. 거구의 몸에 걸맞게 앞접시도 컸고, 앞접시에 담긴 볶음밥의 양도 거대했다. 우물거리며 볶음밥을 와앙 먹는 햄스터 귀 메이드 앞에 검은색 숏컷을 한, 동태눈의 메이드가 건운을 보고는 꾸벅 목례했다. 메이드의 정석처럼 검은 메이드복에 하얀 에이프런은 입은 사람이 건장한 체격임에도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주었다. 허리를 감싸는 리본 부분에, 잔상을 남기듯 흐릿한 검은색 사각형 테두리와 그 안에 검은색 글씨로 ‘공격반 소속 민여휘’라고 적힌 이름표가 눈에 띄었다. 음식을 만들 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이름표를 뒤로 매단 모양새였다. 이상하게도 치마 끝단이 어정쩡하고 실밥이 나 있다 했는데, 바로 옆 쓰레기 통에 그을리고 젖은 메이드복의 천이 담겨 있었다. 건운은 동태눈의 메이드에게 마주 꾸벅 인사했다. 

 

“바쁜가 봐요, 미니 씨?” 

“재료 손질은 거의 끝나서 이젠 괜찮습니다.” 

 

잘게 다져진 여러 볶음밥용 채소들과, 반원 모양으로 썰리거나 채썰어진 채소무더기가 열 소쿠리는 넘게 있었다. 팔리지 않는다면 대부분은 저 두 메이드의 입 속으로 사라지겠지, 건운은

속으로 생각하고 주방 반대편을 바라봤다. 고양이 귀 메이드와 짧은 금발의 메이드가 요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음식은 곧 나올 겁니다. 수석 요리사가 조리를 맡았거든요.” “굳이 안 먹어도 될 것 같습니다만….” 

“에이, 만든 사람의 정성을 생각해 줘야죠.” 

 

고양이 귀 메이드는 너스레를 떨며 손을 내저었다. 건운의 눈에 빛이 사라졌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고양이 귀 메이드가 길고 오목한 칵테일 잔을 집어들어 꺼냈다. 손길이 닿는 순간부터 컵에 차가운 성에가 꼈다. 

 

“그래도 먹어보면 후회는 안 할 걸?” 

 

짧은 금발의 메이드가 웃으면서 말을 걸었다. 누구나 넋을 놓고 바라볼 정도의 미인이었다. 눈가의 흉터가 아름다움을 해치고 있었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살면서 한 번도 못 볼 정도로 아름답고 미적으로 훌륭한 외모였다. 머리에 쓴 노란 머리띠와 하얀 프릴이 녹색 리본을 타고 다른 메이드들과는 다른 매력을 흘려 보냈다. 자신감에 가득 찬 미소가 얼핏 자만처럼도 보였다. 

 

“알고 있어요. 알고 있지만…, 굳이… 굳이 메이드 카페에서 먹어야만 했을까요……?” 

 

건운이 심란하게 말했지만, ‘글쎄~’라며 능청스럽게 답한 짧은 금발의 메이드가 능력으로 후라이팬에서 지글거리는 볶음밥을 한

번 휙 뒤집었다. 팔짱을 끼며 벽에 대충 기댄 포즈가 모델 같았으나, 빽빽한 프릴과 밑단에 리본이 여러 개 달린 메이드복이 귀여운 위화감을 풍겼다. 에이프런의 프릴이 어깨를 덮을 정도로 풍성했고, 에이프런의 테두리를 따라 녹색 리본 끈이 장식처럼 달렸다. 태엽 모양의 은색 이름표에는 노란색으로 ‘공격반 소속 미카엘 엔시스’라고 적혀 있었다. 수석 셰프들이 으레 그러는 것처럼 왼쪽 가슴팍에 이름표가 달려 있었다. 

 

“그렇지만 직원보다 손님이 더 낫지 않겠어?” 

“그건 할 말 없네요.” 

“그러면 조금이라도 손님 지위를 누려보던가. 너도 곧 메이드가 될 거니까.” 

“네?” 

“그렇다는데요?” 

“뭐가요??” 

“그렇게 되었다네요.” 

“왜요???” 

“음식은 준비가 되면 테이블로 서빙해드리겠습니다.”

“아니, 지금 음식이 중요해요?” 

 

짧은 금발의 메이드가 장난스럽게 입꼬리를 올려 웃고 옆에 있던 동물 귀 메이드들이 박수를 쳤다. 어안이 벙벙한 건운이 동태눈의 메이드에게 이끌려 엉거주춤 주방 바깥 쪽으로 밀려났다. 건운의 어이없다는듯이 지르는 소리에 동태눈의 메이드가 눈을 한 번 깜빡거렸다.

 

“먹는 건 중요합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비해 살이 빠지신 것 같습니다만.” 

“제… 제대로 챙겨 먹었어요…!” 

“진짭니까?” 

“…네.” 

 

동태눈의 메이드가 건운을 빤히 바라봤지만, 건운은 눈을 돌리고서는 슬금슬금 주방을 나섰다. 서서히 멀어지자, 동태눈의 메이드가 어쩔 수 없다는듯이 주방 안으로 되돌아갔다. 주방 안에서 ‘좀 더 많이 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같은 목소리가 들렸지만, 건운은 못 들은 체 하고는 털레털레 자신이 앉았던 테이블 쪽으로 돌아가려 발을 옮겼다. 원래 앉았던 테이블의 반대 방향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건운은 소란이 들리는 쪽을 바라보다가 그쪽으로 향했다. 하얀 단발의 메이드와 짧은 갈색 머리 메이드가 같이 쭈그려 앉아 수런거리고 있었다. 건운은 두 메이드에게 다가갔다. 

 

“여기서 뭐해요?” 

“어, 오랜만이네? 회사 일로 바빠서 안 올 줄 알았는데.”

“…저는 연락도 못 받았습니다만.” 

“종종이! 오랜만이야! 지금은 인테리어를 손보고 있었어.”

“인테리어요?” 

 

하얀 단발의 메이드와 짧은 갈색 머리 메이드가 차례로 인사했다. 하얀 단발의 메이드는 하얀 에이프런과 메이드복을 입고 있었고, 군데군데 작고 검은 리본이 식물의 뿌리처럼 달려 있었다. 무릎 길이를 살짝 넘는 메이드복의 끝에는 길고 넓은 프릴이 달려 있었고, 에이프런의 리본은 여러 겹으로 칭칭 둘러 싸듯 매였다. 꽃으로 인테리어를 할 모양인지 메이드복의 치맛자락과 하얀 오버니삭스에 꽃잎이 몇 장 붙어 있었다. 하얀 단발의 메이드는 건운 쪽을 바라보면서도 꽃을 연신 피워냈다. 손목에 붕대처럼 감긴 리본에 하얀색 데이지 이름표가 있었다. 이름표에는 검정색으로 ‘치유반 이레인 리샤흐’라고 적혀 있었다. 

 

“어떤 꽃병이나 화분을 어디까지 세워 놓을지 고민하는 중이었어. 담이가 꽃가루 알레르기인 사람도 있을 것 같다고 해서.” “전 치유반이 있지만 아무래도 일반인들이 손님일 거니까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았거든!” 

 

짧은 갈색 머리 메이드가 그리 말하며 맑게 웃었다. 짧은 머리카락에는 메이드 머리띠 대신 리본 머리핀이 여럿 달려 있었다. 머리색과 비슷한 갈색의 민소매 메이드복은 허벅지의 중간까지 올 정도로 짧았고, 치마만 덮는 하얀 에이프런의 옷자락에는 여러 종류의 폭탄 와펜이 붙어 있었다. 그 속에 자연스럽게 폭탄 모양 이름표도 섞여 있었다. 하얀 글씨로 ‘공격반 소속 담청광’이라고 적힌 이름표 아래로 어쩐지 너덜너덜해 보이는 에이프런의 레이스가 보였다. 분리형 퍼프 슬리브가 채 가리지 못한 다부진 팔에 커다란 흉이 여상히 자리했다. 짧은 갈색 머리 메이드의 옆에는 여러 모양의 꽃병이 놓여 있었다. 유리나 도자기처럼 흔히 볼 수 없는 재질인 걸 보니, 능력으로 만든 것 같았다. 건운이 꽃병 모양 철골을 들어 보았다. 묵직해서 제대로 쓸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공간을 분리하는 건 좋은 생각이긴 한데…, 이 꽃병은 너무 무겁지 않을까요?” 

“그것들은 꽃꽂이 연습용으로 만든 거라서 안 쓸 거야. 실제로 쓸 건 솔이가 만들어 준댔어!” 

“너도 좀 도울래? 지금은 손님 역할인 건 아는데, 어차피 일할 거잖아.” 

“…….” 

 

하얀 단발의 메이드가 가볍게 한 말에 건운은 말을 잃었다. 망연히 서 있는 손님을 뒤로 하고 두 메이드는 머리를 한 데 모아 알콩달콩 이 꽃을 어떻게 꽃을까 의논하기 시작했다. 하얀 단발의 메이드가 짧은 갈색 머리 메이드의 조언을 들으며 한 손에 꽃을 모으며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짧은 갈색 머리 메이드가 하얀 단발의 메이드에게 꽃을 손에 드니까 부케 같다고 농담식으로 말했다. 그러다가 더 나아가서 누가 꽃인지 모르겠다고 연신 귀엽다며 알랑거렸다. 하얀 단발의 메이드가 장난스럽게 툭 밀치며 익숙한 상황이라는 것처럼 부끄럽다는 반응은 않고 쿡쿡 웃었다. 건운은 두 메이드의 뒤에서 ‘메이드복을 입었지만 역시 평범한 커플이군요.’처럼 태평하게 둘을 바라보며 이열했다. 둘의 알콩달콩한 장면을 보는 사이, 그들을 향해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는 누군가가 다가왔다. 유리 꽃병을 한아름 들고 오는 참새상의 메이드였다. 

 

“솔 씨, 도와드릴게요.” 

“고마워. 무거운 건 아니었지만, 떨어질까봐 조마조마했거든….”

 

건운이 참새상의 메이드에게서 꽃병 절반을 받아 꽁냥대는 메이드들의 앞에 두었다. 참새상의 메이드도 꽃병을 바닥에 늘어놓았다. 수고했어요. 건운이 참새상의 메이드에게 인사를 건넸다. 참새상의 메이드가 가볍게 인사를 받으며, 하얀 단발의 메이드가 꽃병에 꽃을 꽂는 것을 허리를 살짝 굽혀 바라보았다. 반소매가 퍼프로 되어 있는 셔츠에 멜빵치마 같은 밤색 메이드복이 무릎 위까지 내려오고, 그 아래로 하얀 속치마가 레이스를 내보이며 메이드복을 적당히 부풀려 미감을 더했다. 둥그런 허리 에이프런에 부드러운 프릴과 동그란 주머니가 달려 있었다. 약간 밋밋한 메이드 머리띠의 뒤로, 황갈색의 긴 생머리를 하얀 리본으로 반만 묶었다. 리본의 정중앙에는 반짝이는 모래알처럼 빛나는 네임핀에 ‘방어반 소속 백솔’이라고 적혀 있었다. 건운은 참새상의 메이드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대충 정리하고는 꽃꽂이를 하는 테이블의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아서 다른 의자를 빼냈다. 건운이 의자를 톡톡 건드리며 참새상의 메이드가 의자에 앉으며 짧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일단 가볍게 열다섯 개 정도는 만들 생각이야!” 

“화려하지 않지만, 심플하지도 않게. 알지?” 

“모르는데요.” 

“모… 모르겠는데?” 

 

짧은 갈색 머리 메이드와 하얀 단발의 메이드가 일단 해보라며 건운과 참새상의 메이드에게 꽃병과 꽃을 쥐여줬다. 어벙하게 꽃병과 꽃이 쥐여진 둘이 서로를 잠깐 바라보다가 엉거주춤 꽃꽂이를 시작했다. 나름 봐줄만하게 꽃이 꽂힌 꽃병들이 열 개가 넘어갈 즈음에, 짧은 갈색 머리 메이드가 자리에서 일어나 꽃병을 테이블마다 배치했다. 건운도 따라 일어나서 메이드의 뒤를 따랐다. 테이블마다 꽃병을 대어보다가 메이드가 건운을 보며 물었다. 

 

“이 테이블에 이 꽃병은 어때 보여?” 

“좋아 보여요. …그런데 이 자리는 좀 춥지 않아요? 창문 근처라서 그런 것 같은데, 난방 없나요?” 

“응? 여긴 원래 난방기가 없었는데?” 

“오……, 설마…….” 

 

흐린 눈을 하는 건운을 본 건지 안 본 건지, 짧은 갈색 머리 메이드가 뒤를 돌더니 팔을 들어 크게 손을 흔들면서 ‘예지야~! 잠깐만 여기로 와줘~!’하고 큰 소리로 불렀다. 잠시 후, 병아리색의 메이드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걸어왔다. 짧은 레이스가 달린 메이드 머리띠에 반묶음으로 묶은 병아리색 단발머리가 걸음을 따라 살랑거렸다. 투명한 뿔테 안경 너머의 금색 눈은 선연한 빛이 났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입가 옆에는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목에는 하얀 레이스가 달린 푹신한 금색 초커를 하고 있었고, 네모꼴로 파인 병아리색 메이드복의 민소매는 에이프런의 프릴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에이프런의 프릴에는 온도계 모양의 표지에 금색으로 ‘방어반 소속 지예지’라고 적힌 이름표가 달려 있었다. 무릎 아래로 내려가지 않은 치맛단은 활동하기 좋게 너무 펄럭거리지도 않았다. 다리에는 하얀색 스리 쿼터 삭스에 금색 리본이 달려 있었다. 가볍게 주먹을 쥔 손에는 레이스가 달린 하얀 장갑을 끼고 있었다. 

 

“역시나 예지 씨였군요.” 

“오늘 안 오나 했는데…, 결국 왔구나.” 

“왜 희생자가 늘어버렸다는 듯이 말하시는 건데요.” 

 

언제나 반짝이던 병아리색 메이드의 금빛 눈이 약간 흐려진 것 같았다. 건운은 기분탓이라고 넘기고 싶었다. 한 메이드와 손님을 둘러싼 우울한 분위기는 신경도 쓰지 않는지, 짧은 갈색 머리 메이드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병아리색 메이드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가 창문 때문인지 좀 추운 것 같아서! 나는 괜찮은데 종종이가 춥대.” 

“확실히 온도가 내려가긴 했네.” 

 

병아리색 메이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냉랭하던 공기가 훈훈한 온기를 띠었다. 창가 근처 자리도 서늘한 기운 없이 따뜻함이 맴돌았다. 바깥이 꽤나 쌀쌀했던 모양인지, 창문에 물방울이 맺혔다. 적당히 공기가 데워지자, 건운이 겉옷을 벗어 자신의 왼팔에 걸쳐 놓고는 조금 찜찜하고 헷갈린다는 눈으로 병아리색 메이드를 바라봤다. 

 

“그런데 능력을 메이드 카페 운영하는 데에 써도 괜찮은 거예요?”

“글쎄…, 애초에 동의도 없이 메이드 카페에서 일하게 하는 것도 문제 아닐까?” 

 

병아리색 메이드의 일침에, 건운은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었다. 상사라는 작자들은 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건운의 한탄 섞인 중얼거림에 병아리색 메이드가 다정하게 등을 도닥거렸다. 위로를 받아서 그럭저럭 기분이 나아지려는 찰나, 메이드 카페에 와서 메이드에게 위로나 받고 있는 자신의 꼴을 자각하고는 더욱 울적한 표정으로 변했다. 병아리색 메이드는 도닥이는 걸 멈추고, 짧은 갈색 머리 메이드와 함께 꽃병을 살피며 이 꽃이 예쁘다거나 저기 테이블에는 이런 꽃병이 어울리겠다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건운은 두 메이드를 잠깐 보고는 조용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건운~! 야, 건운! 얘 어디 갔어?” 

 

어딘가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운 메이드의 목소리가 손님을 찾았다. 건운은 그제야 자신이 시킨 메이드… 어쩌구 메뉴들을 떠올리고는 힘없이 터덜터덜 자신의 테이블로 걸어갔다. 쟁반을 아슬아슬 들고서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건운을 찾던 메이드가 건운을 발견하고 저벅저벅 걸어왔다. 

 

“어디 있었던 거야?” 

 

복슬복슬한 검은 머리카락을 하나로 높게 묶은 메이드가 시안색의 눈을 째릿 부라리며 건운을 쳐다봤다. 길쭉한 더듬이 머리가 메이드의 걸음에 맞춰 살랑살랑 흔들렸다. 더듬이 머리 앞에는 동그란 프릴이 달려 있는 메이드 머리띠의 끝부분에는 시안색 리본이 양 옆으로 풍성하게 달려 있었다. 리본이 귀를 가려 귀걸이가 리본의 끝에 달린 것처럼도 보였다. 허벅지의 반보다 조금 더 긴 하늘색 메이드복의 끝자락에 달린 레이스는 삐죽거렸다. 그 아래의 니삭스는 프릴이 풍성하고 리본이 길쭉해서 걸음마다 이리저리 휘날렸다. 한쪽은 제대로 묶지 않았는지, 곧 풀릴 것만 같았다. 오프숄더처럼 된 메이드복은 끝단에 일정 간격마다 작은 시안색 리본이 붙어서 삐죽빼죽한 레이스를 달아도 귀여웠다. 특이하게 별모양 같은 에이프런에는 꼭짓점마다 시안색 별이 앙증맞게 달렸다. 에이프런의 가운데에 있는 주머니의 왼쪽에는 시안색 스파크 모양 이름표에 검은색으로 ‘공격반 소속 한유하’라고 적혀 있었다. 

 

“짜증나게 한참 찾았잖아!” 

“미, 미안해요. 다른 분들을 도와주느라 늦었네요.” 

 

검은 포니테일의 메이드가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다가오더니 냅다 건운에게 쟁반을 떠밀듯 안겼다. 건운이 멋쩍게 웃으며 상황을 어물쩍 넘기려 했다. 검은 포니테일의 메이드가 쭝얼대며 휙 돌아 걸어갔다. 종종걸음으로 뒤쫓아가자, 메이드가 테이블에 의자를 빼내 냅다 앉았다. 건운은 상황 파악을 못하고 어리둥절하며 검은 포니테일의 메이드를 쳐다보았다. 

 

“뭐 해? 서빙해야지.” 

“내가요…?”

 

검은 포니테일의 메이드가 당연한 게 아니냐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건운은 일단 떠맡은 쟁반에서 오므라이스와 메론 소다를 조심스럽게 들어 테이블에 세팅했다. 세팅해도 여전히 메이드는 건운을 날선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건운은 영문을 모르겠다는듯 눈을 한 번 깜빡이며 냅킨 위에 수저까지 세팅했다. 

 

“이…정도면 된 것 같아요?” 

“아직 남은 게 있잖아!” 

“네…?” 

“메뉴 이름은 말해줘야지?” 

“…….” 

 

건운이 입을 다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냐는듯 당당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메이드의 눈길에 건운은 조용히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테이블종을 들어 가볍게 흔들었다. 검은 포니테일의 메이드가 날 선 눈빛을 보냈지만, 애써 무시하며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곧, 빨간 포니테일을 한 메이드가 테이블로 오더니 자리에 앉은 메이드와 쟁반을 들고 서 있는 건운을 번갈아 쳐다봤다. 

 

“건운, 지금은 손님 역할 아니었어? 근데 왜 서빙을 하는 거야?”

“…….” 

“혹시 그런 취향이야? …걱정마! 네 취향이 그래도 태양 레드는 네 취향을 응원해!” 

“무슨 소리야? 아니거든요?? 유하 씨가 멋대로 떠넘긴 거예요!”

 

빨간 포니테일을 한 메이드가 검은 포니테일의 메이드를 바라봤다. 검은 포니테일 메이드는 불만 있냐는 눈으로 빨간 포니테일 메이드를 마주 꼬나봤다. 빨간 포니테일 메이드가 눈빛을 무시하고 생글생글 웃으며 냅다 검은 메이드가 앉은 의자를 빼냈다. 

 

“자자, 유하도 일해야지!” 

“뭐야? 싫어! 왜 내가 쟤를 대접해야 하는 건데?” 

“응? 에이~, 그러지 말고 같이 하자! 같이 하면 즐겁잖아!” 

 

메이드 둘이 실랑이를 벌이는 걸 건운은 가만히 서서 쳐다보았다. 빨간 포니테일 메이드의 붉은 메이드복 치맛자락이 살랑거렸다. 몽실몽실한 치맛단의 프릴이 무릎 위까지 오고, 그 아래에 종아리까지 오는 양말이 느슨하게 내려가 있었다. 근육이 단단하게 붙어 있어 잘 내려갈 것 같아 보이지 않았지만, 워낙 움직여대서 슬슬 내려간 것처럼 보였다. 넓적하게 큰 프릴이 반소매에도 달려 있었고, 팔을 움직일 때마다 나풀거린다기 보다는 이리저리 휘적거렸다. 몸에 비해 작은 에이프런은 허리에 묶여 동그랗게 자리하고 있었다. 에이프런을 고정하는 리본은 질끈 동여매여, 리본보다는 절대 풀리지 않을 매듭처럼 보였다. 각진 하얀색 글씨에 빨간색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장식된, ‘방어반 소속 염태양’이라고 적힌 네임핀이 스퀘어 넥라인에 붙어 있는 리본에 꽂혀 있었다. 목에는 빨간 스카프가 하늘거리며 고정되어 있었다. 네모나고 빨간 스카프의 모양새가 망토처럼 보였다.

 

“그러면 손님을 둘로 늘리거나 쟤도 종업원 하라고 하면 되잖아! 종이 왜 종업원을 안 하는데!” 

 

검은 포니테일 메이드가 뻗대며 팔과 다리를 붕붕 흔들었다. 빨간 포니테일 메이드가 진정하라고 말하면서 의자에서 손을 떼 감정을 가라앉히라는 것처럼 두 손을 아래로 밀듯 몇 번 움직였다. 그래도 진정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서 잔뜩 성을 내자, 빨간 포니테일 메이드는 가볍게 고민하는 것 같더니 방긋 웃으며 자신이 온 쪽을 향해 소리쳤다. 

 

“시에라~! 시간 되면 잠깐 와줘! 유하가 일하기 싫대!” 

 

빨간 포니테일 메이드가 태평하게 다른 메이드를 불렀다. 그 메이드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는 검은 포니테일 메이드와 건운은 순간 멈칫하더니 빨간 포니테일 메이드를 바라보았다. ‘도망쳐야 하는 거 아니에요?’ 건운이 입모양으로 검은 포니테일 메이드에게 말했다. 검은 포니테일 메이드는 건운을 쏘아보며 쭝얼거렸다. 

 

“네가 고분고분히 종업원 일 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잖아!”

“…무슨 일이야?” 

 

푸석푸석한 긴 금발의 메이드가 터벅터벅 걸어오더니 눈만 움직여 상황을 살펴보다 빨간 포니테일 메이드에게 물었다. 빨간 포니테일 메이드가 해맑게 웃으면서 답하려 입을 열었다.

 

“유하가 자기도 손님 하겠다면서 안 비키는데, 이야기 하려면 일단 자리를 옮겨야 할 것 같아서!” 

 

긴 금발의 메이드가 음…, 하고 침음을 흘렸다. 턱에 손을 가져가 매만지며 생각을 하는 긴 금발의 메이드의 머리카락이 팔의 움직임을 타고 스르륵 흐트러졌다. 푸석한 머리에는 하얀 레이스로 된 메이드 머리띠가 있었다. 레이스는 덩굴과 꽃의 모양을 자아내며 고급스러운 주름이 잡혀 있었다. 적절한 위치에 뚫려 있는 구멍이 레이스의 모양을 더욱 아름답게 꾸몄다. 옅은 금색의 메이드복은 빅토리안 메이드복처럼 차분하고 무난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곳곳에 자수나 레이스로 장식이 되어있어 수수하면서도 아름다웠다. 기품이 넘친다고 표현하기에는 메이드복의 치맛단이 다 해지고 이리저리 뜯겨서 대충 보면 남루해 보였다. 메이드복의 자수나 레이스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어쩐지 그리고 어쩌면 그 해지고 뜯긴 치맛자락이 불규칙적인 레이스 밑단 같다고도 여겨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수한 원피스형 에이프런에도 역시 흐릿한 색의 자수가 박혀 있었고, 허리를 지나 에이프런을 고정하는 리본의 옆구리쪽 끈에는 해머 모양 이름표에 무광으로 빛나는 금색으로 ‘공격반 소속 시에라 디아스 에르난데스’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러면… 네가 손을 잡을래? 내가 다리를 잡을 테니까….”

“뭐? 싫어! 다른 놈들에게 맞는 것도 별론데, 너는 절대로 안 돼! 건드릴 생각도 하지마!”

 

검은 포니테일 메이드가 팔을 교차로 모아 몸을 가리듯이 둥글게 말며, 꺅꺅 소리를 질렀다. 의자가 메이드의 움직임에 맞춰 덜그럭덜그럭 요동쳤다. 넘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기우뚱거리는 의자를 바라보다가 건운이 긴 금발의 메이드에게 조심히 물었다. 

 

“어차피 근처에 치유반도 있는데, 적당히 힘조절해서 때리면 괜찮지 않을까요?” 

 

긴 금발의 메이드가 자기 손을 내려다 보며 주먹을 꾹 펴보고 다시 쥐고는 건운을 보며 입을 열었다. 

 

“재단 출신이면 버티겠지?” 

“당연하죠.” 

“당연하지! 아니면 내가 반만 막아줄게!” 

“나는 너네랑 다르게 연약하게든? 반 막아도 못 버틴다고!” 

 

어이 없다는듯 보는 검은 포니테일 메이드가 두 메이드와 건운을 보더니만 의자를 질질 끌고 메이드들이 왔던 통로로 꿍시렁거리며 걸어갔다. 빨간 포니테일 메이드가 친한 체 검은 포니테일 메이드의 어깨에 손을 얹으려다 손을 찰싹 맞고는 포기하고 치근덕대며 나란히 걸었다. 긴 금발의 메이드는 그 모습을 보다가 간단하게 인사하고는 둘이 간 통로로 사라졌다. 한바탕 일어난 소란에 건운은 한숨을 내쉬다가 다른 테이블의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앉아서 숨을 돌리기도 잠시, 또 다른 메이드가 직장에 손님으로 친구가 찾아 온 것 같은 표정을 한 채로 케첩을 들고 건운에게 다가왔다. 닥쳐오는 불안한 공기에 건운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메이드를 쳐다보았다. 분홍 머리 메이드였다. 

 

“메이드하라, 한국능력자육성재단입니다. 오므라이스 서비스 해드릴게요.” 

“예찬 씨…, 고생이 많으시군요….”

 

서비스직 특유의 영혼이 하나도 없는 메이드의 눈과 말투에 건운의 눈빛마저 흐려졌다. 옅은 분홍색 나이트 가운 같은 메이드복이 하들하들했다. 목과 어깨를 감싸는 레이스가 몇 겹 포개졌고, 무릎 부근까지 오는 치마 끝에도 레이스가 구름 그림 같은 곡선을 그리며 달려 있었다. 쉬폰 소재의 치맛자락은 미세한 움직임에도 활기차게 너울쳤다. 팔꿈치까지 오는 소매에는 레이스가 없었지만, 바람결에도 가볍게 휘날려 가만히 있지 않았다. 분홍 머리 메이드는 겨우 한 뼘을 넘을까 말까 하는 크기의 에이프런의 허리띠로 허리를 묶어 메이드복의 상체가 펄럭거리지 않게 고정했다. 메이드의 에이프런 한 귀퉁이에 구름인지 양털인지 모를 구불구불한 원형의 이름표에 분홍색 글씨로 ‘치유반 소속 피예찬’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오므라이스 서비스는 뭐예요?” 

“오므라이스에 케찹으로 손님이 원하는 글씨 써주는 거래.” 

 

우와, 그거 진짜 오타쿠 같네요. 건운이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약하게 질색하며 말했다. 분홍 머리 메이드도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자기한테 왜 이러느니 이게 맞냐느니 불만을 계속 쭝얼거렸다. 그러다가 빨리 하고 끝내버리자며 건운에게 어떤 문구가 좋냐고 테이블에 손을 얹고 삐딱하게 기대듯 서서 물었다. 

 

“음…, 원래 정해진 문구는 뭐였는데요?” 

“메뉴에 적혀 있을걸? ‘사랑해’에 하트 꽉 채워서.”

“어우……. 그거 말고 다른 걸로 해주면 안 되나요?” 

 

건운이 진저리를 치며 제 팔을 쓸자, 분홍 머리 메이드가 독기 어린 눈으로 건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떤 말을 부탁해야 그나마 나을지 오므라이스를 바라보며 고민하던 건운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분홍 머리 메이드의 시선을 보고 불안한 분위기에 얼어붙었다. 

 

“야.” 

“…네?” 

“지금 내 사랑이 받기 싫다는 거야?” 

“네???” 

“누군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알아? 나도 하기 싫었는데 내가 사랑한다고 하면 좀 받아주지, 왜 그래?” 

“잠, 잠깐만요….” 

“내 사랑은 받기 싫어????” 

“아니, 진정 좀 해보세요…!” 

 

분홍 머리 메이드가 케첩 뚜껑을 뽁 열고 오므라이스가 담긴 그릇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건운은 당황해서 메이드가 걸어오는

것만 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메이드의 팔을 조심스럽게 잡아 붙들었다. 진정시키려 잡은 의도와는 별개로 분홍 머리 메이드가 길길이 날뛰었다. 

 

“놔 봐, 놔 봐. 내가 꼭 짜고 만다. 뭐? 내 사랑이 받기 싫다고??” “진… 진정 좀 해주세요…!” 

 

집념에 가득 찬 분홍 머리 메이드가 오므라이스에 기어코 다가가 케첩을 죽 짰다. 건운은 허망하게 케첩이 ‘사랑해’를 그려넣는 걸 바라보았다. 메이드가 하트 안까지 케찹을 확실하게 다 채워넣자, 메이드의 팔을 잡은 힘이 스르륵 풀렸다. 메이드는 자유로워진 나머지 팔로 오므라이스 접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케첩으로 ‘from. 예찬’까지 써 놓고는 그제야 만족했다는듯 당찬 표정을 짓고서는 꼭 다 먹으라고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과 오므라이스를 번갈아 가리키다가 주방 쪽으로 사라졌다. 

“여기 있었네. 메이드 카페는 어때, 손님?” 

“준비는 아직 완벽하진 않으니 보완점이 있으면 지금 말씀해주시죠.” 

허망하게 분홍 머리 메이드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는 건운에게 하얀 메이드들이 와서 말을 걸었다. 긴 머리카락을 왼쪽과 오른쪽의 사이드테일로 묶은 두 메이드들은 똑같은 메이드복을 입고 있었다. 하얀색 레이스 리본으로 묶은 사이드테일이 묵직했다. 전체적으로 무난한 빅토리안 메이드복이 차분한 옷매를 보였다. 안대를 한 메이드의 메이드복은 안경을 쓴

메이드의 메이드복과 달리 프릴이 옷단에 매달려 있었다. 엉성하게 주름이 잡힌 프릴이었지만, 각이 잡혀 있지 않은 메이드복이라 외려 그 메이드에게 잘 어울렸다. 반대로 안경을 쓴 메이드의 메이드복은 각이 제대로 정갈하게 잡혀 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치마에 잡혔다 풀리는 주름마저도 재봉틀로 박아낸 듯이 깔끔한 양감을 자아냈다. 가슴에서부터 무릎 아래까지 오는 긴 백색 에이프런이 무던했다. 치마 아래의 양말과 구두까지 전부 하얀색이라 카페 안의 다른 메이드들보다 존재감이 흐렸지만, 둘이 붙어 있어서인지 못 보고 지나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가장 무난한 메이드복을 입었음에도 건운을 당혹스럽게 했던 건 두 메이드들의 손목에 채워진 수갑이었다. 안대를 한 메이드 쪽 손목과 가까운 수갑 한 쪽에는 하얀 빛무리 같은 이름표에 연녹색으로 ‘방어반 소속 백은채’라고 써져 있었고, 안경을 쓴 메이드 쪽 손목과 가까운 수갑 한 쪽에는 검은 밤안개 같은 이름표에 흰색으로 ‘방어반 소속 백은혁’이라고 적혀 있었다. 건운은 그 수갑을 바라보다가 메이드들의 얼굴을 각각 바라보다 다시 그 수갑을 봤다. 

 

“…설명하자면 깁니다.” 

“아이올로네가 묶자고 하고 가온이 거미줄로 묶으려다가 나르샤가 수갑을 줬어.” 

“ 왜요……?” 

 

하얀 메이드들이 수갑을 바라보는 건운의 시선을 느끼고 시선을 피하거나 수갑을 들어 보였다. 들어보이는 다른 메이드의 행동에 안경을 쓴 메이드는 눈을 꾹 감았다 떴다.

 

“나르샤는 안된다고 했었지만, 아이올로네가 강탈해서 채웠습니다.” 

“이래야 사람들이 좋아한다나 뭐라나~ 금단의…, 뭐?” “쌍둥이 타입…이랬지.” 

“판매 전략이라니까 일단 넘어가죠…….” 

“그런데 건운, 쌍둥이지만 사고방식이 다른 두 인격체를 하나로 묶는 게 판매 전략입니까?” 

“시장에는 이상한 취향의 고객도 많으니까요.” 

 

건운의 말에 메이드들은 납득하려다 이해를 포기한 낯빛이었다. 건운은 포기하라는듯 가볍게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안대를 한 메이드가 다른 하얀 메이드를 가리키고 장난스러운 웃음을 입가에 띄웠다. 

 

“사실 나는 얘가 주방이나 안전관리 일을 받을 줄 알았거든.”

“왜요? …설마 그거 말씀하시는 건가요? 광어 방역?”

“…….” 

“괜찮아, 괜찮아. 살다 보면 광역 방어를 광어 방역이라고 말할 때도 있지.” 

“…먼저 놀린 사람에게 위로 받고 싶진 않은데.” 

 

하얀 메이드들 사이에 미묘한 분위기가 돌았다. 피붙이들이 싸우기 전에 기싸움을 하는 모습 같았다. 건운은 둘의 눈치를 살피다가 살며시 손을 들었다. 하얀 메이드들의 하얀 눈이 건운을 바라보았다. 건운이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아직 네 분과 대화를 못 했는데, 혹시 뀨랑 테미 씨 보셨나요?”

“그 둘은 저기 안쪽 단체석 쪽에 있습니다.” 

“…여기 단체석도 있어요? 어째서요?” 

“판매전략인가 보지.” 

 

건운은 작게 오, 하고 침음을 흘렸다. 메이드 카페에 단체석 같은 게 있어도 괜찮은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눈앞에 있는 서로 내외하면서도 투닥거릴 것 같은 쌍둥이 메이드들을 보고서는 생각을 포기했다. ‘그러면 이만 가볼게요.’ 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다른 메이드에게 인사를 하러 자리를 떠났다. 카페의 안쪽으로 가자, 실루엣이 간신히 보일 정도로 불투명한 커튼으로 가려진 공간이 있었다. 건운은 커튼을 걷으며 들어갔다. 

“혹시 여기 있어요?” 

“왔으면 일단 거기 앉지 그래.” 

안에 들어서자 검은 머리카락을 땋아내린 메이드가 앉아 있었다. 테이블에는 벨벳 천이 고풍스럽게 깔려 있었고, 그 옆에는 카드 덱과 난초가 새겨진 나무 통이 놓여 있었다. 당황스러운 눈으로 땋은 머리의 메이드를 보았다. 흉이 진 얼굴에 안광 하나 없는 검은 눈이 건운을 마주 바라보았다. 땋은 머리의 메이드는 소매가 넓은 빅토리안 메이드복을 입고 있었다. 검은 메이드복은 서양의 느낌이 들진 않고 동양의 느낌이 물씬 들었다. 단추나 레이스가 하나도 없이 사람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큰 소매는 무복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메이드복의 안감은 팥색이라 더욱 한국스러운

멋이 났다. 어깨를 덮는 원피스형 에이프런이 무릎을 살짝 덮었다. 에이프런의 허리끈에는 금색 실로 한국 문양이 새겨져 있어 고급스러웠다. 에이프런의 허리끈에 노리개처럼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금색 방울이 여러 개 달린 이름표에 검은색으로 ‘치유반 소속 규태’라고 적혀 있었다. 건운은 분명 땋은 머리의 메이드가 에이프런의 리본을 옷고름 묶듯 매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면서도 흘끔흘끔 테이블 위에 놓인 점술 도구를 곁눈질했다. 

“손님은 뭐가 궁금해서 왔지? 연애, 사업, 재물, 학업…….” “여기… 메이드 카페 아니었어요? 왜 여기서 메이드 차림으로 점을 보는 거예요…?” 

건운의 물음에 땋은 머리의 메이드는 나무 통을 열어 쌀을 움켜쥐고는 건운에게 촥촥 뿌렸다. 던지는 손길에 쌀알이 착착 감겼다. 쌀알이 몸에 튕겨져 나와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다. 몸이 아프다기보다는 정신적으로 아팠다. 

“이 문디야, 시키니까 입었지 누굴 양것들 일복 입고 싶어 환장하는 복장도착증으로 만드려 들어?” 

“아야! 죄, 죄송해요!” 

“머리가 제대로 돌아버렸는갑제, 멀쩡한 남정네를 변태로 만들고.” 

“잘못했어요…!”

쌀로 신명나게 얻어 맞는 도중, 안쪽에서 다른 메이드가 커튼을 젖히고 고개를 드밀다가 준비된 의자에 앉으려 뒤로 뺐다. 그러다 쌀을 던지는 땋은 머리의 메이드에게 평온한 어조로 물어보았다. 

 

“그대야, 소란스러운데 누가 왔니?” 

“소란스럽기는. 별 거 아니니까 들어가 있어.” 

“테미 씨!” 

 

건운의 외침에 메이드가 커튼을 젖혀 밖에 누가 있나 바라보았다. 쌀투성이의 건운과 백발 포니테일 메이드의 시선이 마주했다. 백발 포니테일 메이드는 벌떡 일어나 건운에게 손을 내밀어 잡고 일어나게끔 했다. 건운은 일어나서 가볍게 백발 포니테일 메이드에게 목례했다. 백발 포니테일 메이드는 인사에 환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백발 포니테일 메이드는 검은 장갑을 끼고 있었다. 그 위로, 하얀 프릴과 레이스가 달려 있는 넓은 소매의 검은 메이드복이 눈에 들어왔다. 소매에서 몇 센티미터 위로 금박이 소매의 라인을 따라 부드럽고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수놓여 있었다. 넓은 소매가 점점 좁아지고, 몸통은 하얀 에이프런으로 단정하고도 딱 달라붙게 고정되어 있었다. 아래로 퍼지는 메이드복의 치마는 앞은 짧고 뒤는 길어, 메이드라고 부르기에는 고급스러운 멋이 있었다. 치마 밑단에도 소매처럼 하얀 프릴과 레이스가 달려 있었고, 패티코트의 하얀 레이스 역시 세련되어 보였다. 에이프런은 옷에 고정된 것처럼 보였는데, 단추와 레이스가 달려 있어, 에이프런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메이드복의 카라를 고정하는 리본의 정가운데에 백발 포니테일 메이드의 이름표가 있었다.

하얀색으로 ‘방어반 소속 테미스 U. 아스트라이아’라고 적힌 금색 만년필 모양 이름표였다. 

 

“그나저나 신이시여. 신이라서 여기 점술 부스에 같이 있는 건가요?” 

“다른 이들보다는 내가 제격이라고 하더구나.” 

“것보다 볼 거야, 안 볼 거야? 안 보면 나가서 한 대 태우고 온다.”

“그대야, 금연한다고 하지 않았니?” 

“이런 상황에서 잘도 안 피우겠다.” 

 

백발 포니테일 메이드는 건운에게 ‘그대가 점을 봐달라고 해주렴. 담배는 끊어야 하지 않겠니.’하고 말을 전하곤 돌아가 앉았다. 건운은 봐도 나쁠 건 없겠지 싶어 땋은 머리의 메이드에게 부탁했다. 땋은 머리의 메이드는 익숙하게 타로 카드를 집어 들었다. 

 

“질문 같은 거 있나.” 

“음…. 내가 이 메이드 카페에서 심신 모두 멀쩡히 나갈 수 있을까요?” 

 

땋은 머리의 메이드는 별 시덥잖은 것을 본다면서 타로 카드를 대강 섞고 카드 세 장을 골라 내보였다. 

 

“아무 생각 없이 왔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고, 너도 거기에 어울린댄다.” 

“내가요……?”

“저놈들이 널 내버려 둘 거라고 생각했나. 액땜은 쟤가 한다니까.” 

“그렇게 생각은 안 했지만……, 그런데 어디 가요?”

“담배.” 

 

땋은 머리의 메이드는 뒤편의 커튼을 걷고는 바깥쪽으로 걸어 나갔다. 백발 포니테일 메이드가 어쩔 수 없다는 것처럼 웃음을 흘리다가 의자를 끌어 건운과 가까이 앉았다. 

 

“내가 여기에서 맡은 일은 액땜이란다.” 

“그렇군요.” 

“그런데 이런 것도 겪어봐야 성장하는 것 아니겠니?”

“…메이드 카페에서 멀쩡하게 못나가는 일도요?” 

“하하, 그렇지만 모든 일은 겪어봐야 아는 거란다.”

“이거 태업 아니에요?” 

 

건운이 미심쩍고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백발 포니테일 메이드를 바라봤지만, 메이드는 신경쓰지 않고 건운을 부드럽게 두드렸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몸소 걷어주며 건운에게 나가도 된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건운은 메이드를 한 번 더 바라보다가 한숨을 조금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 밖으로 나갔다. 백발 포니테일 메이드는 손을 가볍게 흔들어 주다가 커튼 안 쪽으로 사라졌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할 무렵, 건운은 맞은편에 있던 단체석을 발견했다. 아직도 왜 메이드 카페에 단체석 같은 게 있는지 명확한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한 번 어떤 공간인지 구경하기 위해 들어갔다. 안은 아치형 문이 달려 있는 공간이었는데, 가장 큰 문은 살짝 열려 있고 그 안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건운은 그 문을 살며시 열어 들어가 보았다. 

 

“그렇게 빼지 말고 자신감 있게 말해야지, 난새!” 

“……모에모에…, 아. 건운…!” 

 

안에는 검은 머리의 메이드와 피곤한 인상의 메이드가 어떤 연습을 하고 있었다. 피곤한 인상의 메이드가 살며시 들어온 건운을 보고 반색했다. 반대로 건운은 두 메이드의 모습을 보고 조금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왔구나, 건운! 이리 와서 앉으렴. 마침 난새에게 맛있어지는 주문을 알려주고 있었단다.” 

 

검은 머리의 메이드는 자신의 옆자리를 톡톡 건드리며 앉기를 재촉했다. 건운은 마지못해 앉기는 했으나 영 마음에 드는 눈치는 아니었다. 검은 머리의 메이드의 무릎에 피곤한 인상의 메이드가 반쯤 걸터앉은 모양새였기 때문이었다. 검은 머리의 메이드는 오프숄더로 된 베이비 핑크색 메이드복을 입고 있었다. 어깨를 드러내는 옷의 윗선에는 크고 하얀 프릴이 한 겹 달려 있었다. 레이스는 달리지 않은 심플한 메이드복에 반원 같은 하얀 에이프런이 허리를 감싸고, 메이드복의 밑단은 허벅지의 반쯤 오다 프릴을 한 번 펄럭이더니 멈췄다. 그 위로 시스루 원단으로 된 천이 치마를 부드럽게 감싸 내렸다. 메이드복의 디자인은

심플하지만, 밋밋하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고 은근히 고급스러웠다. 다리에는 프릴로 된 캣가터와 반스타킹을 입고 있었다. 캣가터에는 ‘방어반 소속 발렌틴 카드니코프’라는 검은색 글씨가 써진 분홍색 확성기 모양의 이름표가 달려 있었다. 검은 머리 메이드는 발끝을 까딱거리며 피곤한 인상의 메이드가 제 무릎에 걸터 앉은 것에 만족스러워 하는 눈치였다. 

 

‘네가 발렌틴 좀 말려주면 안 돼…?’ 

 

피곤한 인상의 메이드가 건운에게 입모양으로 말을 걸었다. 검은 머리 메이드의 눈치를 연신 살펴보며 한 번만 도와달라고 건운에게 부탁했다. 피곤한 인상의 메이드는 작은 초록색 리본이 붙은 하얀색 메이드 머리띠를 머리에 쓰고 있었다. 그 아래로는 클래식한 초록색 메이드복을 입고 있었다. 어깨에는 퍼프가 있고 그 아래로는 팔에 딱 붙었다. 하얀색 소매에는 초록색 단추가 하나 달려 있었다. 어깨를 덮을만큼 큰 프릴이 달린 H형 에이프런이 수수한 매력을 더했다. 신은 신발도 단정한 구두였으나, 이상하게도 하얀 에이프런에는 초록색 리본과 고양이 와펜, 낙서 같은 하트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범인은 당연하게도 검은 머리의 메이드일 것이었다. 건운은 아니꼽다는 눈으로 피곤한 인상의 메이드를 보면서 이름표가 어디 있나 살펴보았다. 이름표는 머리핀처럼 꽂혀 있었는데, 머리띠의 리본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검은색 새 그림이 흐릿한 이름표에, 초록색으로 ‘공격반 소속 허난새’라고 적혀 있었다. 

 

“폐하, 저 못된 고양이가 나보고 폐하를 말려달래요.”

“응? 난새, 설마 주문 외우는 게 싫어?” 

“폐하의 말을 듣는 게 싫은 건가요? 이거 반역죄예요.”

“아니거든! 야! 차인 주제에 이간질을 해?” 

 

건운과 피곤한 인상의 메이드가 서로에게 아르릉거렸다. 중간에 낀 검은 머리의 메이드가 또 이런다며 한숨을 푹 쉬었다. 못된 고양이와 차인 놈의 별 이득도 없는 자강두천 속에서 검은 머리의 메이드가 골머리를 앓았다. 

 

“자자, 그만하자? 나는 내 종이랑 애인이 싸우는 거 보고 싶지 않으니까, 응?” 

“그런데 저 녀석이 먼저 이간질을 하잖아, 발렌틴!”

“하지만 저 간신배가 먼저 갖은 냐냥을 다 떨잖아요, 폐하!” 

 

검은 머리의 메이드가 상황을 끝내려는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곤한 인상의 메이드가 검은 머리의 메이드가 앉았던 자리에서 조금 벗어나 제대로 앉아 검은 머리의 메이드를 바라보았다. 건운도 검은 머리의 메이드를 바라보았으나, 피곤한 인상의 메이드와 아직도 기싸움을 하고 있었다. 검은 머리의 메이드가 크흠, 하며 둘 앞에서 목을 가다듬고는 허리에 손을 얹었다. 

 

“난새, 차였다고 놀리면 안 되는 거 알지?” 

“그렇지만….” 

“놀려도 되는 사정은 없어. 알겠지?”

 

단호한 말에 피곤한 인상의 메이드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의기양양해진 건운은 검은 머리의 메이드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곧 혼나는 학생 같은 얼굴로 검은 머리의 메이드를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을 모함하는 건 나쁜 일이야.” 

“네….” 

“그러면 가서 메이드복 입고 오렴.” 

“네?” 

“뭐해? 폐하의 명령이잖아.” 

“그, 그렇지만요? 어째서요?” 

“그야 여긴 메이드 카페잖니? 내가 메이드인데 종이 주인이면 그것도 이상하잖니.” 

 

건운은 반박할 수 없는 말에 조금 고민하다가 알겠다며 자리를 떴다. 건운이 메이드복을 찾으러 떠나자, 방 안에는 다시 메이드 둘만 남게 되었다. 피곤한 인상의 메이드가 조금 어이없다는 눈으로 건운이 떠난 문을 바라보았다. 

 

“…입으라고 했다고 진짜 입는 사람이 있구나.” 

“자자! 난새! 그러면 다시 주문 연습 할까?” 

“…….” 

 

둘이 ‘맛있어지는 주문’을 연습하다,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가 들리고 천천히 문이 열렸다. 단발머리 메이드가 복잡한 심경을 담은 얼굴로 방 안에 들어왔다.

 

“건운, 입고 왔구나!” 

“입으라고 하셨으니까요….” 

 

아직 부끄러움을 견뎌내지 못한 단발머리 메이드가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청록색 메이드 머리띠에 꼬리가 긴 빨간 리본이 달려 있었다.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리본의 끈이 나풀거리며 움직였다. 검은 메이드복은 벨슬리브라 팔꿈치에서 소매로 갈수록 넓게 퍼졌다. 옷의 끝단에는 청록색 프릴이 풍성하게 달려 있어 움직여도 둥그스름한 곡선의 형태를 띄었다. 어깨끈과 허리끈이 달린 반원의 청록색 에이프런에는 가장자리에 붉은 리본이 스티치처럼 콕콕 박혀 있었다. 손에는 검은 가죽 장갑을 끼고 신발 역시 검은 가죽 구두를 신고 있었다. 무릎보다 살짝 짧은 치마와 그 아래로 오는 니삭스의 사이에도 역시 청록색 프릴이 풍성하게 달려 있었다. 단발머리 메이드의 손에는 아직 달지 못한 종모양 이름표가 들려 있었다. 검은 글씨로 ‘방어반 소속 건운’이라고 적힌 이름표였다. 검은 머리의 메이드가 그 이름표를 빼앗아 들고서는 메이드 머리띠에 달린 빨간 리본에 냅다 달아주었다. 단발머리 메이드가 착잡한 표정을 짓더니 구석에 몸을 기대어 서 있을 때였다. 

 

“다들 모이십시오.” 

 

강아지 귀 메이드가 메이드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방에 있는 메이드들 모두 영문을 모르는 얼굴이었다. 검은 머리 메이드가 피곤한 인상의 메이드와 단발머리 메이드를 활기차게 이끌고는 카페 카운터 쪽으로 향했다. 다른 메이드들이 모두 모여 있었고, 그새 메이드복으로 갈아입은 단발머리 메이드를 보고서는 측은한 눈빛을 보내거나 웃음소리를 냈다. 

 

“이제 카페의 테스트도 끝냈고, 곧 개업 시간입니다. 몇 번이고 계속 말했지만, 일반인들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실수하지 않길 바랍니다.” 

 

메이드들은 다들 수런거리기면서 불평을 토하거나 대답을 하거나 무시하는 등 일관적이지 않은 태도였으나, 강아지 귀 메이드는 그런 건 신경쓰지 않기로 했는지 메이드들 속에 있는 건운에게 향했다. 

 

“건운.” 

“네, 나르샤 씨….” 

“건운은 나중에 누가 요청하면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면 됩니다.” “예?” 

 

단발머리 메이드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을 하다가 진심이냐는듯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강아지 귀 메이드는 마이크를 쥐여주고는 메이드들을 해산시키며 카운터로 향했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단발머리 메이드에게 다른 메이드들이 힘내라며 등을 도닥거리거나 비웃음을 보냈다. 

 

“아니, 잠깐만요…! 내가 왜 노래를 하게 되는 건데요?”

“상부의 지침입니다. 무대는 주방 맞은 편에 있습니다, 건운.”

“위치가 문제가 아니잖아요! 당황스럽…….” 

 

단발머리 메이드의 구질구질한 말을 강아지 귀 메이드가 손을 들어 막아 세웠다. 단발머리 메이드는 더 항의하려다가 강아지 귀 메이드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모두들 첫 손님입니다. 준비하십시오!” 

 

대답하는 소리와 함께 분주하게 발을 옮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카페의 입구에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곧, 딸랑하고 도어벨이 내는 청명한 소리가 카페 안에 울렸다. ‘인사하십시오.’ 강아지 귀 메이드가 단발머리 메이드에게 언질을 줬다. 손님이 

카페 안으로 몇 걸음 더 들어오자, 메이드들이 손님에게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메이드하라, 한국능력자육성재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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